바흐와 첼로

1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소리가 문 사이 틈과 방음이 잘 안 되는 벽 사이로 들려온다. 2층 침대에 누워 올려다본 천장은 매우 가까웠다. 12월이 가까워지는 11월 말, 5시만 되면 해는 노란색 빛을 내며 땅 아래로 꺼진다. 그야말로 바흐의 첼로곡이 생각나는 때였다. 나는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뜻도 잘 모르는 영어 팝송을 하루 종일 듣는다거나 심지어는 뜻도 찾아보기 힘든 프랑스어, 독일어 노래를 교양인 인척 듣는 인간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 반하면 가사 없는 클래식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 텁텁한 기침을 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오랜 시간 누워있던 건 아니었지만 몸을 일으켜 세우자 눈앞이 요란하게 요동쳤다. 사다리를 내려가던 중에 하마터면 1층 바닥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나는 혼자 방을 쓰지만 2층 침대를 사용한다. 형이랑 같이 쓰던 침대를 나 혼자서 계속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딱히 침대를 살 돈이 없다던가 재미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냥 새 침대를 구하는 것이 귀찮을 뿐이었다.

2

 몸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학원을 가기위해 옷을 챙겨 입어야 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알맞은 옷차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숙제였다. 낮에는 따뜻하고 밤에는 춥다. 이 단순한 사실이 몇 년 동안이나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딱히 의미는 없었다. 패션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는 엄마가 사준 옷 밖에 없었기 때문에 애초에 선택지가 제한적이었다. 의미 없는 고민 끝에 안에는 반팔티를 입고 겉에는 조금은 두꺼운 외투를 입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딴 얘기지만... 정말로 딴 얘기지만 대한민국에는 영재학교라는 것이 있다. 똑똑한 엘리트 학생들을 모아 영재교육을 하는 학교인데 소위 ‘천재’라고 불리는 학생들만이 엄격한 입시를 뚫고 영재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그리고 과학고라는 것이 있다. 과학고 또한 어려운 입시를 치르고 중학교 성적이 높은 학생들만이 입학할 수 있는 좋은 학교였다. 나는 영재학교에 지원했고 떨어졌다. 그렇지만 과학고에는 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재학교에 비해 과학고가 급이 낮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지울 순 없었다. 난 고등학교 입시에 성공했는데도 왜 패배자 같을까? 쓰라린 마음을 다스리며 아무 생각 없이 학교 기잠을 입었다.

3

 학원을 가기위해 택시를 타고나서 나의 실수를 깨달았다. 하나는 택시를 왕복으로 탈 돈을 챙기지 않았다는 것이고 학교 기잠을 입고 나와버렸다는 것이다. 내 학교 기잠은 고려대 과잠과 비슷하여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었다. 물론 자세히 보면 고려대 과잠 하고 색깔도 미묘하게 다르고 과학고라고 쓰여 있기는 하지만… 딱히 의미는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자의식 과잉이라고 생각해 이 고민은 접기로 마음먹을 즈음 학원가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콜록콜록… 케엑…’ 목에 무언가 걸리듯 기침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 때 일이 생각난다. 중학생 시절에 난 표현하는 걸 잘 못했다. 물론 지금도 잘한다고는 할 수 없다. 아픈 것을 아프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사람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몸이 별로 좋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는데 평소보다 10배 힘이 들어가고 누군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말을 거는 느낌이었다. 난 이때 아픈 것을 아프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어머니는 나를 병원에 데려가 주셨고 독감진단을 받아 집에 누워 ‘타미플루’를 먹을 수 있었다. ‘타미플루’는 좋은 약이었다.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그대로 학원에 가게 되었다. 이때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학교에 가지 않고 학원에 갔다는 게 너무 어이없고 스스로도 왜 그랬는지, 고등학교 입시가 그렇게 중요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몸이 떨려오는 오한이 이 기억이 생각나서인지 몸이 아파서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슬프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4

 학원가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장소이다. 학원가로 향하는 택시에서 기사 아저씨는 ‘왜 학원이 이렇게 많아야하는지, 학교의 기능을 왜 학원이 하고 있는지 푸념을 늘어놨다.’ 나도 그 푸념에 맞장구 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 또한 그 학원에 가고 있다는 사실에 모순을 느껴 가슴이 아팠다. 학원가에 도착하여 돈을 지불한 나는 택시에 내려 양쪽가로 펼쳐진 학원가를 원망하듯 바라봤다. ‘제발 사라져라 제발 사라져라 제발 사라져라 시발’ 학원을 향해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고3이라는 것이었다. 조금만 지나면 이곳에 올 일은 없을 것이다. 난 절대로 과외 같은 일은 안 할 것이라 다짐했다. 이렇게 까지 사교육을 증오해놓고 결국은 돈을 위해 과외를 한다는 건 나를 죽이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과외보다는 햄버거 알바를 하고 싶다. 햄버거 알바를 하면 햄버거를 만드는 법을 알게 되는 것도 있지만 밥으로 햄버거를 준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도 있다. 햄버거 제조법과 햄버거를 위해서 알바를 한다는 건 유치한 이유였지만 돈보다는 충분히 멋진 이유였다.

 그때였다. 한 꼬마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혹시 고려대생이세요?’ 너무 흠칫 놀란 나는 뜸을 드리다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소년은 뭐지라는 혼잣말을 하고선 민망한 분위기 때문인지 도망가고 말았다. 정말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쁘고 왠지 모르게 슬프고 왠지 모르게 민망하고 왠지 모르게 도망치고 싶어졌다. 책가방을 내려놓고선 기잠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쁘고 왠지 모르게 슬프고 왠지 모르게 민망하고 왠지 모르게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5

 나는 추운 날씨에 몸도 아프지만 반팔티를 입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자신이 너무 초라해져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뭐 그 뒤론 집에 걸어서 돌아갔다는 것과 그 탓에 몸이 차갑게 식어 기침이 더 심해졌다는 것뿐이다. 대단한 이야기를 기대했을지 모르겠지만 오후 5시에서 오후 6시까지의 1시간 동안의 나의 한심한 이야기일 뿐이다. 이게 이 이야기의 끝이다. 아플 때는 쉬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건지, 대한민국 사교육을 비판하는 건지, 그냥 니 학교가 별로 마음에 안 들고 기잠이 고려대랑 비슷해서 창피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형이 묻기는 했지만 나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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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왜 쓰기 시작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쓰레기 같은 글입니다.